그저 교보문고 쿠폰을 받았을 뿐..
생일선물로 누군가에게 교보문고 3만원 쿠폰을 받았는데, 나는 책을 구매할때 알라딘에서 주로 구매하는 편이기에 어쩔수 없이 교보문고로 접속해서 볼만한 책이 없을 지 찾고 있었다.
어떻게 찾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으나, 흥미가 있는 분야라서 충동구매(?)하게 되었다.
과학vs신앙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지혜 13, 5)
둘은 하나의 형제와 같이 존재했었다.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둘의 정의에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학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에 기반하여, 재현이 가능하거나 연속적인 관찰이 가능한 상태에 있을 때이 과학적이다 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신앙은 유일회적인 경험으로써 개개인에게 나타나고 그 것이 이전에 경험중에서 해석이 되는 부분으로 납득 된 후에 신앙적으로 정의하게 된다.
이러한 정의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다 보니, 둘은 공존할수가 없게 되었고 더군다나 현 사회가 점차 인본주의와 과학만능주의로 힘이 싣게 되자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며, 교회조차도 그러한 과학에 힘을 빌려 ‘창조과학’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설명하고있다.
마치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 할수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과학조차도 설명할수 없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예로써 진화론을 설명할 때에 최초에 어떤 우연한 사건을 ‘지극히 낮은 확률’ 이라는 말로 대체한다.
우주론과 한계
우주상수는 말 그대로 모둔 우주론을 설명할때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값이다. 이 값은 어떠한 계산과 기준으로 생성되었는 지에 대해서 모른다.
우주는 계속적으로 넓어지고 있으며,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중력장및 여러가지 가설이 더해져서 그럴듯하게 설명이 되지만 관측되거나 증거는 명확하지 않다.
우주가 정확한 값으로 정교하게 생겨났는데 과연 실수한번 없이 생겨날수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다중 우주론이며, 지금과 같은 우리은하의 다른 버전이 거의 무한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두 다른 지극히 적은 확률로써 존재한다고 하지만 이를 관측하거나 증거로 제시할만한 것이 없고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진화론과 한계
진화론의 첫 주장은 에라스무스 다윈으로부터 시작 되었지만, 학문적 완성은 손자인 찰스 다윈이 했다.모든 생명은 하나의 기원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각자의 환경과 원하는 바대로 진화가 되어서 현재 그러한 모습대로 살아가고있고 지금도 진화는 진행중이라는 주장이다.
진화론은 소진화와 대진화가 있는데, 소진화는 같은 종에서 여러형태로 변화하는게 소진화이다. 하나의 개품종에서 여러종류의 개의 품종은 영국시대에 많이 생겨났다. 대진화는 생명의 나무에처럼 하나의 가지의 형태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진화론에는 대진화를 설명할만한 중간화석의 부재와 최초의 단백질덩어리의 생성과 그 것이 진화하는 과정에 대해서 현대의 생물학에서는 설명할수가 없는것이 한계이다
현대의 과학시대에도 여전히 신앙은 필요하다
우주론과 진화론에 있는 지극히 낮은 확률에 대한 동사를 하나님의 개입을 의존하는 것이라는 부분으로 치환된다고 말한다.
교회는 과학만능주의자처럼 무신론에 기반하여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믿음안에서도 설명이 가능하며, 과학에 대한 적대적인 입장이라는 사실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과학안에서도 관찰되거나 관측되지 않은 상황을 믿고 탐구하는 것이 어찌보면 과학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임을 나타나는 증거일수가 있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며, 보고자 하는 만큼이 과학인것 같다. 그래서 그 믿음에 기반한 관찰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개입이 설명이되고 그 분의 신묘막측을 느낄수가 있게 된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지혜 13, 5)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지혜 13, 9)
느낀점
과학과 종교의 탄생은 같다. 쌍둥이 같지만, 사람들의 지혜가 점차 쌓이면서 인본주의 적인 사고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점차 서로가 경험한 것만 믿게 되다보니까 과학과 종교는 나뉘게 되었다.
과학은 사람들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정의가 되지만, 종교는 유일회적인 경험을 시작으로 개개인에게 경험적으로 축적되고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종교는 정의된다.
과학은 지극히 작은 확률이라는 말로써 하나님을 지우기 바빳다. 하지만 종교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의존하여 개개인의 성장을 도왔다. 과학은 이를 인정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과학의 기본적인 정의는 물질적인 증거를 기반으로 생기는 것이므로 아마도 인류의 계속되는 분쟁중에 하나일 것이다.
책을 통해서 나는 과학과 종교가 합쳐질수 없다는 것을 본게 아닌, 가능성을 보았다. 성경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반발에서 시작해서 성경의 마지막 말로 하나님을 믿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감동과 성경을 보거나 창조론과 진화론, 그리고 여러가지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요소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어떻게 접근하고 바라봐야 하는 지를 느낄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